늦가을 10월 하순은 해가 생각 보다 짧다.
경교장으로 내려오는 길목에서 어느새 건물 서쪽으로 석양 빛이 물들었다.
서둘러 홍난파 상과 가옥을 뒤로 하고 경교장으로 향하였다.
2001년 서울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6월 13일에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에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하였던 역사적 장소이다.
이승만의 이화장(梨花莊),김규식의 삼청장(三淸莊)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건국 활동의 중심을 이룬 3대 요람이다. 1938년 금광으로 돈을 번 최창학(崔昌學)이 건축면적 396.69㎡, 연면적 945.45㎡(지하1층, 지상2층)규모로 지었으며, 1930년대 건축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래 이름은 죽첨장(竹添莊)이었다.
8·15광복 이후 최창학이 김구의 거처로 제공하였는데, 김구가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는 경교[京橋;경구교(京口橋)의 약칭]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였다.
건물은 단아한 2층 양관으로 전면 분할의 비례가 아름다우며, 1층의 좌우창을 원형으로 돌출시켰고, 그 상부를 의장의 중심체로 하였다. 현관 2층부에는 6개의 붙임 원주를 사용하여 5개의 들임 아치창을 냈다.
김구가 반탁·건국·통일 운동을 주도할 때에는 흔히 '서대문 경교장'이라고 일컬었으며,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로 이용되었다. 또한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집무실에서 안두희(安斗熙)의 흉탄에 의해 서거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최창학에게 반환되었고 다시 타이완 대사관저로 사용되다가 6·25전쟁 때에는 미국 특수부대가 주둔하는 등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967년 삼성재단에서 매입하여 강북삼성병원 본관으로 사용되어왔다.
이후 서울시에서 소유는 그대로 두되 전체 공간을 복원하기로 합의해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당시의 모습대로 재현하였다. 2013년 3월 2일부터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경교장에서 조금 내려오면 정동 사거리 앞에는 돈의문터가 있다.
조선시대 서쪽에 있던 대문(大門)인 돈의문!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 가운데 서쪽의 정문이다.
서쪽의 큰 문이라 하여 서대문(西大門)이라고도 한다. ‘새문’, ‘신문’이라고도 불렸다.
서울시 중구 정동의 ‘신문로’, ‘새문안길’, ‘새문안교회’등의 이름은 돈의문의 다른 이름인 ‘신문’, ‘새문’에서 따온 말이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8개의 문을 만들었다.
그 중 4개는 대문이고 나머지 4개는 소문이다. 여기서 돈의문은 4개의 대문 중 하나이다.
한양에서는 일정한 시간마다 모든 성문을 여닫았다.
이를 통해 문들은 수도 방위뿐만 아니라 수도의 치안을 유지하고 사회질서를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돈의문(敦義門)은 의(義)를 돈독히 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돈의문은 태종 때 풍수지리적인 이유로 폐쇄되고 대신 돈의문 남쪽에 서전문(西箭門)을 세웠다.
세종이 도성을 보수할 때 서전문을 헐어버리고 새로 문을 세웠는데 그 이름을 돈의문이라 했다.
돈의문은 약 410년 동안 인정(人定)(28번의 종소리)와 파루(罷漏)(33번의 종소리)에 문을 열고 닫으며 사람들의 통행을 제한했다. 돈의문은 1915년에 일제의 경성도시계발계획에 따른 전차의 복선화로 인해 강제로 헐렸다.
서울시는 돈의문을 원형 그대로 복원할 예정이다.
퇴근 길과 겹쳐서 서소문의 덕수궁길을 따라 서울시의회 별관 옆을 지나 서소문교회 앞을 지나 소월길로 오르는 길은 미리 길을 잘 익혀두지 않으면 퇴근 하는 사람들과 엉켜서 복잡하기 그지 없다.
늘푸른 님의 경험로를 따라 우린 쉬이 용산 전쟁기념관까지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어 좋았고, 모두가 감탄을 했다.
서울시장이나 택시기사, 오토바이 택배 기사도 자전거로 이런 길을 알고 잘 달릴 수 있을까 싶다.
평화를 기원하는 공원 "전쟁 기념관"
전쟁의 아픈 상처를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전시관이다.
약 82.6㎢의 대지 위에 1994년 완공된 기념관은 9,000여 점의 전쟁 관련 기념물을 전시하고 있는 대규모 공간이다.
정문 좌우로 광개토대왕비의 실물 모형과 국군장교와 인민군 병사가 포옹하는 모습의 형제의 상이 자리 잡고 있으며 선사시대 청동검과 생명의 나무가 어우러지는 모습의 상징탑이 중앙으로 우뚝 서 있다. 형제의 상은 한국전쟁 당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적으로 만난 실제 형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조형물이다.
평화의 광장을 지나 이어지는 건물은 6개의 전시구역으로 나뉘는 실내 전시장이다.
물과 빛이 어우러지는 호국추모실은 창군 이후 전사한 17만 명의 이름을 담은 장부를 보관하는 엄숙한 공간이다.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 이 땅에서 사용된 수많은 무기들을 전시하고 있는 전쟁역사실을 시작으로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등에서 한국전쟁을 시작으로 세계로 파견되어 활약하고 있는 국군과 발전하는 군사 장비들을 살펴볼 수 있다.
6·25전쟁실 내부에 위치한 전장체험실은 총소리 등 소음과 진한 화약 냄새를 체험하는 장소로 전투의 공포와 긴장감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대형장비실을 지나 연결된 야외전시장에는 육, 해, 공군의 과거와 현재의 주요 장비 실물을 전시하는 곳으로 장비들을 직접 체험하며 관람할 수 있다.
주말 오후와 기념일에 펼쳐지는 절도 넘치는 국군의장대의 사열과 군악대의 연주 등은 한나절 가족 나들이를 흥겹게 한다.
<동영상 26. 전쟁기념관, 형제상> https://youtu.be/DzkXxSDrzig
전쟁기념관을 나와 국방부 앞 건널목을 건너 자전거 겸용도로를 따라 반포대교를 건넜다.
하루 동안 자전거를 타고 서울역사 투어를 통하여 현장을 직접 살피면서 잘 몰랐던 구석 구석을 돌아보게 되어 기쁘고 뜻 깊은 라이딩 시간이었다. 반포의 손두부집에서 뒷풀이를 하면서 매월 네번째 주 월요일날 정기적으로 테마 투어를 하기로 의견을 모의고 헤어지면서 ... 다음을 기약했다.
끝으로 대원들을 멋진 코스를 안전하게 잘 이끌어 주시고 해박하게 해설을 해주신 늘푸른님,총무를 맡아 수고하신 강가딘님 그리고 불원천리 멀리 통영에서 일찍 올라오신 토마스님 ... 수고하신 분들께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